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미국-쿠바 관계 새 역사 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0일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에 도장을 찍는 역사적인 '2박3일'을 시작했다. 전용기 '에어포스 원'으로 이날 오후 아바나에 도착한 오바마 대통령은 22일 쿠바 국민을 향해 TV 연설을 하며 양국 우호의 새 시대를 선언한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찾는 것은 1928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 이후 88년 만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은 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떠오르게 한다"고 비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날 미국 대사관을 찾은 뒤 미셸 여사 두 딸인 말리아.사샤 등과 함께 인근의 유명 관광지인 아바나 구시가지를 도보로 돌아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날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국빈만찬에 참석한다. 만찬에 앞서 쿠바 기업인들도 만난다. 쿠바 방문의 정점은 22일 아바나 국립극장에서 쿠바 국민을 상대로 하는 TV 연설이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양국 협력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것"이라며 "이번 연설이 생중계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국의 해빙을 전하는 상징적 이벤트는 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미국 프로야구팀인 탬파베이 레이스와 쿠바 국가대표팀의 친선 경기를 관람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방문 기간 반체제 인사도 면담해 쿠바 정부에 인권 개선에 나서도록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뒤 반미 정책을 고수했던 피델 카스트로와의 회동은 예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62년 소련의 핵 미사일을 들여오려고 시도하다가 미국이 해상 봉쇄에 나서며 3차대전 위기를 불렀던 당사국인 쿠바는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국제 사회에서 정상 국가로 대접받는 결정적인 계기를 얻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을 맞는 아바나는 이미 사람과 달러가 유입되며 미국과의 관계 회복의 따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쿠바 기업인 히람 센텔레스는 USA투데이에 "쿠바의 공기가 달라졌다"고 전했다. 2014년 9만1000명이던 미국 관광객은 지난해 15만 명으로 60% 급증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전년 동기에 대비해 지난해 상반기 중 독일 22% 프랑스 25% 영국 26% 스페인 16% 등 유럽 관광객들까지 덩달아 늘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2016-03-20

쿠바 하늘길도 열린다, 미국과 협약…하루 110편 운항

'금기의 땅'으로 여겨졌던 쿠바 하늘에 미국 항공기들이 공식적으로 출항한다. 50년 만이다. 미국과 쿠바 정부 교통부장관들은 16일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회동을 갖고 미국 전역 주요도시에서 아바나행 항공기 20편을 매일 운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공식 협약서에 서명했다. 쿠바 내 다른 9개 주요 도시 공항에는 각각 하루 10편의 왕복항공편이 허용된다. 양국 교통부 수장인 앤소니 폭스 장관과 아델 이수케르도 로드리게스 장관은 "양국의 역사에 매우 기념비적인 날"이라고 입을 모으고 "두 나라가 수교를 회복하는 노력의 중요한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국은 지난해 공식적인 외교관계 회복했지만 아직까지 미국 시민들의 관광 목적으로의 쿠바 방문을 허용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가족방문, 교육 또는 종교 활동, 인도적 활동, 스포츠 행사 등 12가지 범주 안에 드는 여행목적에 한해 여행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항공사들의 전세기 운행은 종종 있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항공편 협약을 통해 일반 관광도 곧 그 문호를 개방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항공사들은 해당 항공편의 운항권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돌입한다. 물망에 오르는 항공사로는 매년 1200여 편의 전세기를 아바나에 운행하고 있는 아메리칸에어를 비롯, 유나이티드 콘티넨털, 델타 등이 꼽히고 있다. 동시에 쿠바 소재 '쿠반 에어라인'도 유사한 내용으로 미국 교통국의 허가를 요청하게 될 것이지만 이를 허가하는 과정은 다소 오래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연방 교통국은 쿠바행 항공편을 운행하고자 하는 항공사(승객용 또는 화물용)들의 지원서를 3월 2일까지 접수할 것이며 심사 결과는 여름에 발표될 예정이다. 따라서 이르면 올해 가을부터 정식으로 운항이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항공편 협약에 이어 연방 상무부는 쿠바 측에 경제를 더욱 개방할 것을 주문했으며 쿠바 무역당국도 미국의 일부 대 쿠바 금수조치를 해제해달라고 주문하고 나서 전반적인 경제 교류도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인성 기자

2016-02-17

쿠바 진출 첫 미국 기업은 앨라배마 중장비업체 ‘오군’

앨라배마의 한 영세 중장비 업체가 쿠바에 혁명이 일어난 1959년 이래 첫 공장을 건설하는 미국 기업이 됐다. 최근 AP 보도에 따르면 연방 재무부는 지난주 앨라배마에 거주하는 호라스 클레몬스와 사울 베렌털씨가 운영하는 중장비 업체 ‘오군’에 대해 쿠바 투자를 허가했다. 미국 민간 기업의 투자로는 피델 카스트로의 1959년 공산혁명 이래 처음이다. 쿠바 정부도 미국 기업의 투자소식에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업체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서쪽으로 30여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한 특별 경제구역에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오군’은50만~100만달러를 투자해 건설하는 공장에서 쿠바에서 조달받는 중고 부품을 활용해 저가의 트랙터 등 중장비를 생산할 계획이다. 내년 1분기 중 공장 가동에 나서 연간 1000여대의 중장비를 생산할 예정이다. 또 이후엔 쿠바와 자유무역 협정을 체결하고 있는 남미 국가들에도 수출할 예정이다. 클레몬스는 “많은 사람들이 빨리 쿠바에 가서 뭔가를 팔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그냥 돈을 벌자는 게 아니라 양국 국민들 모두가 필요한 일을 하는게 가장 이로운 사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 기업이 쿠바 땅에 투자를 하는 것은 오바마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이 지난 2014년 국교 정상화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조현범 기자

2016-02-16

'비공식 관광'은 OK…비자별도로 구입해야

여권 기록 귀국시 문제될수도 12월부터 LA서 직항 노선 취항 현지 환전 땐 13% 세금 내야 인터넷 가능…비용은 비싼 편 '헤밍웨이, 체게바라, 모히토, 럼주, 시가'. 쿠바가 미주 한인들과 가까워지고 있다. 지난 7월1일 미국과 54년 만에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쿠바로 향하는 관광객 수는 급증하고 있다. 본지에 10편에 걸친 쿠바 현지취재 연재 후 독자들의 문의도 이어졌다. 쿠바 여행에 대한 궁금증을 Q&A로 정리했다. -쿠바 여행은 합법인가. "공식적으로는 아직 제한이 있다. 시민권자들은 지난 1월16일부터 12가지 방문 목적(가족 방문, 취재, 연구, 교육, 종교, 대중 공연, 운동경기 등)에 한해 별도의 라이선스 없이도 쿠바를 방문할 수 있다. 재미있는 건 방문 목적중 아직 '관광(tourism)'은 포함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신혼여행 등 관광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 3국 경유 항공기를 이용해 쿠바로 입국하면 미국 정부에서는 사실상 쿠바 방문 여부를 추적하기 어렵다. 비공식 관광은 가능하다는 뜻이다." -비자는 어떻게 받나. "비자 스탬프를 여권에 받지 않는 것이 좋다. 쿠바 입출국 기록이 여권에 남으면 미국 귀국시에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투어리스트 카드(tourist card)'라고 불리는 카드 모양의 비자를 구입해야 한다. 항공사나 여행사를 통해 구입할 수 있지만, 못했다면 쿠바 공항에서도 살 수 있다. 20달러다. 비자와 함께 여행자보험(하루 4.30달러)도 사야 입국 심사를 받을 수 있다." -항공편은. "12월부터 아메리칸에어라인이 LA와 아바나 직항 노선을 취항한다. 왕복 항공료는 800달러선으로 예상된다. 그전까지는 캐나다, 멕시코 혹은 파나마 경유편을 이용해야 한다. 비수기인 현재 왕복 항공료는 1400달러 선이다. 성수기인 12월부터 3월까지는 요금이 올라갈 수 있다." -숙박은. "호텔이 부족하다. 민박집 '까사(Casa)' 숙박을 권한다. 까사는 25~40달러 정도다. 닻 모양이 그려진 간판을 찾으면 된다. 파란색은 외국인, 빨간색은 내국인용이다." -환전은. "쿠바는 이중 화폐제도를 운영한다. 달러 등 외국 화폐는 환전소에서 쿡(cuc)과 교환해서 써야한다. 100달러를 내면 13%를 세금으로 떼고 87달러를 준다." -갈만한 곳은. "아바나에서는 '카피톨리오(Capitolio)'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대표 번화가인 오비스포(Obispo) 거리, 오페라 극장, 호세 마르띠 공원, 아바나 대성당, 말레콘 해변, 모르 요새(Castillo del Morro) 등등을 꼽을 수 있다. 아바나 외에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트리니나드와 쿠바의 부산으로 불리는 산티아고도 반드시 가야할 곳이다." -먹거리는. "쌀이 주식이다. 검은콩 소스를 뿌려 먹는다. 쿠바인들은 돼지고기를 선호한다. '래촌 아사도'라는 통돼지 BBQ가 입맛에 맞았다. 바나나 반죽안에 고기와 치즈를 넣고 튀긴 또스똔도 맛있다."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나. "쓸 수는 있다. 현재 아바나 시내 35곳에서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시간당 4달러 정도로 비싸고, 인터넷 카드를 사기 위해 보통 2~3시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정구현 기자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다. 대서양과 카리브해를 접하고 있어 '카리브해의 진주'라고도 불린다. 수도는 아바나. 면적은 110,860㎢로 한반도의 절반 정도다. 인구는 1100만 명으로 흑인과 백인 혼혈인 물라토가 51%로 가장 많고 백인(37%), 흑인(11%) 순이다. 언어는 스패니시를 쓴다. 평균 월수입이 20달러 정도지만 무상제공되는 공공 의료와 교육을 포함해 구매력 평가로 산출한 1인당 GDP는 1만1258달러다. 열대성 기후로 덥고 습하다. 4~9월까지는 미 동부시간과 같다. - 더 많은 쿠바 취재 현장 사진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세요.

2015-08-27

초미니 아가씨들 "쉘 위 댄스"…'밤샘 클럽' 젊은이들 불야성

새벽 1시부터 피크타임 춤 매개로 청춘들 짝짓기 거리의 여성이 60~70% 불법에도 매춘 단속 안해 "같이 춤출래요?" 당황스럽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얼굴과 몸매 모두 완벽한 초미니 원피스 차림의 아가씨들이 손을 잡아끈다. '쿠바의 강남'격인 미라마르의 최고급 나이트클럽. 민박집 주인 후안 카를로스(28)가 "진짜 아바나의 밤을 보여주겠다"며 데려간 곳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곳이 아니라 쿠바 젊은이들이 노는 클럽이라고 했다. 클럽엔 식사를 할 수 있는 야외 카페가 같이 붙어있다. 밤 11시, 야외 카페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배는 더 많았다. 클럽 입장 전에 야외카페에 앉아 맥주 한잔을 마시는 사이에만 4~5명의 아가씨들이 '댄스 요청'을 해왔다. 유일한 동양인 손님에 대한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후안, 내가 이렇게 인기있는 남자인지 몰랐어." 후안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는 '폭발적인 인기'의 이유를 차차 설명해주겠다 했다. 클럽 내부로 들어섰다. 비트강한 음악이 귀를 때렸고, 손님들이 뿌린 향수와 땀냄새가 뒤섞여 코를 자극했다.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평일이라 그런가 했더니 "대부분의 아바나 클럽 피크 타임은 새벽 1시부터"란다. 후안 말대로 1시는 클럽이 변신하는 시간이었다. 어느새 발디딜 틈 없을 정도로 손님으로 꽉 들어찼고, 무대에 라이브 밴드가 올라서자 내부는 후끈 달아올랐다. 빠른 비트 전주에 'La te olvide'라는 인기 곡이 연주되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어서서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춤은 아주, 관능적이다. "쿠바인 중 살사를 못 추는 사람은 거의 없어. 공짜로 배울 수 있거든. 쿠바의 춤은 추는 게 아니라 우리 핏속에 흐르는 유전자야." 후안도 살사 강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의 설명대로 여성들의 골반은 음악 속에서 흘렀다. 자연스러운 춤을 매개로 청춘들의 짝짓기도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이 많아 몸과 몸 사이 공간은 없어 춤은 모두 밀착됐다. 자리에 앉아 넋 놓고 지켜보는데, 또 아가씨들이 덤벼든다. 후안은 그들을 거절하기 바빴다. '왜 쫓느냐'고 투덜거렸더니 그제야 인기의 실체를 설명했다. "이 클럽에 오는 아가씨는 두 종류야. 넉넉한 집안 딸이거나 히네테라(jinetera)지." 히네테라는 '거리의 여성'을 뜻한다. 후안에 따르면 클럽에 오는 여성의 60~70%가 히네테라라고 했다. 화대는 80~100달러라고 한다. 쿠바인 평균 월급이 20달러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거액인 셈이다. '신참 히네테라'는 50달러를 부른다고 했다. 포주들이 아가씨가 상품성이 있는지 검증하기 위해 낮은 가격을 매기기 때문이다. "매춘은 불법인데도 경찰이 단속을 안해. 포주들한테 뇌물을 받거든. 5년 전만해도 히네테라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는데, 점점 더 많아져. 쉽게 큰 돈을 버니까. 슬픈 일이지." 설명을 듣는 중에 한 아가씨가 다짜고짜 옆에 앉았다. '이젠 안 속는다' 싶었는데, 영어가 유창하다. 후안의 동네 친구 엘레나다. '꼬레아노(한국인)'라는 내 소개에 클럽 음악만큼이나 크게 비명을 지른다. 한류 팬이란다. "안녀하쎄요~" 인사까지 한다. 인기있다고 착각했던 구겨진 자존심은 한류 덕분에 다소 회복됐다. 음악은 단 1초도 쉼없이 말 그대로 밤새도록 계속됐다. 클럽이 끝난 시간은 새벽 6시다. 아바나에서 마지막 밤은 잠들지 못했고, 유난히 더웠다. 정구현 기자 - 더 많은 쿠바 취재 현장 사진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하세요.

2015-08-26

"쿠바, 북한과 비슷? 오히려 한국과 닮았다"

쿠바 양성 한국어 통역관 1호 북한 주재 쿠바대사관서 근무 한국에선 연세대 어학당 공부 김일성 3~4차례 통역 경험 쿠바엔 현존 사람 동상 없어 밀입국 실패자도 처벌 안해 일할 때와 놀 때도 화끈하게 이민자들 성공 공통점 많아 한류로 한국인에 호감 쑥쑥 북한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나라가 쿠바다. 서로 형제국이라고 칭할 만큼 외교관계가 돈독하다. 그래서 쿠바는 북한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쿠바에 대해 알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은 실제와는 많이 달랐다. 여행 가이드 펠리페 이슬라(58)씨는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 적임자다. 그는 쿠바가 양성한 1호 한국어 통역관으로 김일성 대학에서 유학하고 북한 주재 쿠바대사관에서 근무했다. 한국에선 연세대학교 어학당에서 공부하고 살았다. 남북을 다 경험한 그는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다"면서 "쿠바와 닮은 쪽은 오히려 한국"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우리말로 했다. 그는 노랗다와 누렇다의 어감차이까지 구별할 정도로 한국어에 능숙하다. -한국어는 언제 어떻게 배웠나. "한국어가 좋아서 배운 것은 아니다. 1972년 정부가 최초로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대학 지원자를 모집했다. 당시 열 여섯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진학 대신 언어대학을 선택했다. 입학해보니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인기 과목은 정원이 다 찼고, 남은 언어가 '조선어'밖에 없었다." -북한에 여러 차례 갔다. "76년 언어대학 졸업자 중 최우수 학생 6명을 북한 김일성 대학에 유학 보냈는데, 그때 뽑혀 처음 북에 갔다. 쿠바와 북한은 '형제'관계였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한국어 통역관이 필요했다. 78년까지 2년간 북한에서 유학하고, 84~85년과 90~94년 2차례 북한 주재 쿠바대사관에서 통역관으로 근무했다." -북한 생활을 돌아본다면. "처음 갔던 76년은 북한이 잘 살 때다. 유학생 기숙사에서 살면서 불편한 점이 없을 정도로 풍족했다. 하지만 그후 대사관 근무 시절에는 연료가 부족해 겨울이면 항상 떨었다. 또 대사관 직원들은 외부와 단절돼 살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과는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여가시간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대동강변에서 동료들과 고기를 자주 구워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72년 김일성 대학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다. 마르크스, 레닌의 사회주의 관련 서적이 한 권도 없었다. 대신 주체사상 책만 가득했다. 그때 알았다. 북한의 이념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북한과 쿠바는 비슷하다고 알고 있다. "야당이 없고,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한다는 점은 같다. 하지만 그외에는 전혀 다르다. 쿠바엔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이 없다. 평양에 살 때 모란봉경기장(현재 김일성 경기장)에서 태양절(김일성 생일) 축하행사에 동원된 아이들의 공연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쿠바에선 카스트로를 우상화하지 않는다. 또, 최근 스페인 기자가 몰래 촬영한 북한 다큐멘터리가 쿠바에서 화제가 됐는데, 탈북자 총살장면이 담겼다. 쿠바에선 미국으로 밀입국자의 가족에게 책임을 묻거나 밀입국에 실패해 돌아온다 해도 벌을 주지 않는다. 사는 건 자유롭다." -김일성 주석을 봤나. "3~4차례 통역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카스트로 생일에 대사관에 찾아와 연회를 베풀었을 때다. 카리스마가 강했고 웃으면서 하는 말들이 재치있었다. 럼주를 무척 좋아했는데 주치의의 만류에도 그날 술잔 가득 따라 5~6잔을 마셨다. 건배사는 '내 친구 카스트로의 만수무강을 위하여!'였다." -한국엔 언제 갔나. "96년 연세대학교 어학연수차 3개월 있었고, 98년 2차례, 2004년에도 한 달 다녀왔다." -한국 하면 생각나는 건. "어학연수기간이 7~9월이었다. 여름 방학인데도 대학 도서관이 학생들로 가득했다. 교육열과 치열한 경쟁에 놀랐다. 쿠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한국 국민에 대한 인상은. "쿠바 국민과 비슷했다. 일할 때 열심히 일하고 놀 때 화끈하게 논다. 둘 다 주변 큰 나라들 사이에서 고생한 역사 때문에 자존심이 세고, 투항하지 않는다. 이민사회 성공도 공통점이다. LA한인사회처럼 마이애미에 쿠바커뮤니티도 크게 성장했다." -남북간 포격전이 있었다. "알고 있다. 남북 관계는 말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남북 통일은 한반도의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다. 우리 속담에 '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지만 벌레도 들어온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통일이라는 시원한 바람을 위해서라면 작은 문제들은 감수해야 한다는 뜻)" -쿠바 정부가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됐다. 쿠바 혁명은 실패한 건가. "혁명은 분명히 필요했다. 인종차별, 교육, 의료, 문화 모든 면에서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진 앙골라 등 해외파병으로 국민의 살림살이가 더 어려워졌다. 또 장기집권은 가장 큰 실수다." -쿠바인들의 강점은. "우린 어려울수록 낙천적이고 실망하지 않는다. 1990년 소련 붕괴로 최악의 경제 시기를 맞았을 때 팥죽과 빵으로 연명하면서도 쿠바인들은 유기농을 발전시켰다. 우린 지금도 매일이 위기지만, 불평하지 않고 산다. 한마디로 쿠바인들은 위기 때 더 세련된 사람들이다." -쿠바에 오는 한국인들 가이드를 전담하다시피 한다던데. "이름이 좀 알려져서 그런 평가를 듣나보다. 연평균 내가 맡는 한국 방문객이 100팀 정도다. 윤상현, 손예진 같은 연예인도 안내했다. 이만섭 국회의장이 쿠바 방문시(2001년 4월) 피델 카스트로와 면담을 했는데 그때도 통역을 맡았다." -가족은. "중국인 아내와 아들 하나를 뒀다. 최근 배달전문 중국 식당을 열었다. 반응이 좋다. 아직 쿠바에는 배달 문화가 자리 잡지 않아서 발전 가능성이 크다." -한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쿠바에 부는 한류 때문에 한국 사람들에 대해 호감이 크다. 좋은 이미지를 망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구현 기자

2015-08-25

[빗장 열린 쿠바를 가다] 바뀌는 국민 스포츠…야구의 나라? 이젠 축구

골목 야구를 보러가자 했다. 쿠바의 국민 스포츠가 야구란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그런데 가이드 펠리페 이슬라(59)씨의 말이 의외다. 야구 경기를 하는 아이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젓는 것이 아닌가. 두 시간 가까이 아바나 시내 골목을 다녔다. 정말 맨손 야구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대신 공원과 거리마다 '맨발 축구'가 한창이었다. 펠리페씨는 "요즘 쿠바의 변화 중 하나가 젊은이들 사이의 축구 열풍"이라고 말했다. 15번가에 있는 야외 농구코트에도 축구경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끼(aqui·여기), 아끼!" "아다르가르(adargar·막아)!" 오후 4시 섭씨 36도(화씨 97도), 습도 70%의 폭염만큼이나 함성은 뜨겁다. 경기 방식이 독특했다. 5명씩 팀을 짜서 먼저 5골을 넣는 팀이 이기는 방식이다. 농구코트 밖에는 이긴 팀과 경기하려는 다른 팀이 대기 중이었다. 웃통을 벗고 운동화, 혹은 샌들, 아니면 맨발로 공을 쫓았다. 골대는 가로 1.5m 세로 1m 크기의 철골로 만든 휴대용 미니 골대다. 골문이 좁기 때문에 오히려 골인은 더 짜릿했다. 코트 밖으로 나온 진 팀의 하비에르 톨레도(24)씨는 "야구는 배트, 글러브 등등 장비들이 필요하지만 축구는 공과 골대를 표시할 돌멩이 두 개면 어디서든 할 수 있다"고 예찬론을 폈다. 쿠바 축구열풍의 배경은 두 가지다. 2008년부터 국영TV에서 유럽 프로축구팀 경기를 거의 매일 방송해주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 각종 TV프로그램을 다운로드 받아 가정집에 배달하는 '빠케테(Paquete)' 덕분이기도 하다. 하비에르씨는 "다저스에서 뛰고 있는 푸이그를 좋아하지만, 요즘은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가이드 펠리페씨도 "특히 메시가 소속된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간 빅매치가 중계되면 양팀 저지를 입고 집집마다 모여 응원한다"고 거들었다. 펠리페씨에 따르면 월드컵이 열릴 때 쿠바 국민이 응원하는 국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독일, 스페인 순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활동 중인 한국 선수들도 쿠바에서 유명하다. 15번가에서 만난 움베르토(24)씨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팬이라서 박지성을 잘 안다"고 말했다. 쿠바의 축구 열기는 사회적으로도 의미있는 변화다. 움베르토씨와 같은 팀원인 다니 리베라(38)씨는 "축구는 쿠바의 세대를 가르는 기준"이라며 "30대 이상은 야구, 그 아래는 축구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쿠바 야구의 상징인 5만5000명 규모의 아바나 '라티노아메리카노 스타디움(Estadio Latinoamericano)'에서도 축구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을 땐 경기장을 절반으로 나눠 아마 축구 경기를 한다고 펠리페씨는 설명했다. 과거의 쿠바 소년들에게 출세의 유일한 길이 미국 메이저리그였다면, 현재 쿠바의 젊은이들에게 유럽 풋볼리그가 21세기형 성공티켓이 되고 있는 셈이다. 미래의 쿠바는 지금 맨발로 공을 차며 심장이 터질 만큼 뛰고 있다. 설사 그 목표가 1.5m의 좁은 골문이라 해도. 글·사진=정구현 기자

2015-08-20

바깥 세상 문물 담은 '빠케테'…꼬레아노 확산의 '마술 상자'

"이번 주에 나온 빠케테 봤어?" 요즘 쿠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오가는 대화다. '빠케테(Paquete)'는 영어로 패키지(Package), 우리말로는 소포다. 최근 쿠바에선 이 단어에 새로운 뜻이 추가됐다. 'TV 드라마, 영화, 오락물 등 각종 영상물이 담긴 휴대용 컴퓨터 저장장치'라는 뜻으로 통용된다. 개인 가정 내 인터넷 설치가 불법인 쿠바에서 빠케테는 최신 영상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지하 통신네트워크망 운영자들이 영상물을 내려받아 작은 플래시 드라이브나 외장 하드 드라이브에 담아서 일반 가정집에 배달해준다. 컴퓨터가 없어도 DVD 플레이어만 있으면 USB 포트에 꽂아서 볼 수 있다. 기자가 머문 민박집 주인 후안 카를로스(28)가 보여준 빠케테에는 1주일 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어제 방송된 미국 드라마, 몇 시간 전 끝난 스포츠 경기는 물론 스마트폰용 앱과 비디오 게임까지 수백 개의 프로그램이 담겨있다. 1주일치 분량은 영화 5000편을 담을 수 있는 10TB(테라바이트)로 가격은 불과 2달러다. 후안은 "쿠바 사람 10명 중 8명은 빠케테를 받아본다"면서 "지난 5월 파퀴아오와 메이웨더간 복싱경기도 빠케테로 봤다"고 말했다. 빠케테의 확산은 지하 네트워크망 덕분에 가능했다. 후안이 소개해준 지하 네트워크망 운영자 라파엘 모레노(22)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여 명의 쿠바 젊은이들이 합심해 통신 네트워크망을 깔기 시작했다. 그는 "스트리트넷(길거리 인터넷), 혹은 줄여서 '에스넷(Snet)'이라고 하는데 15년 만에 에스넷을 통해 쿠바 전역 9000대의 컴퓨터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다"고 실상을 전했다. 정부가 불법 인터넷망인 Snet의 존재를 알면서도 단속하지 않는 이유는 Snet 운영자들이 2가지 규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공격하는 정치성 프로그램이나, 포르노물을 올리면 인터넷망에서 즉시 퇴출된다"고 설명했다. 건전한 운영 윤리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도 Snet 운영자들을 지지한다. 빠케테의 확산은 또 다른 문화 열풍을 낳았다. 바로 한류다. 쿠바의 한류 열풍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일등공신이 빠케테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민박집에서 만난 빠케테 판매상 아이야우(24)는 "손님들이 빠케테에 넣어달라는 1순위 프로그램이 한국 드라마와 한국 영화"라고 그 인기를 전했다. 아바나 항구의 창고형 벼룩시장에서 만난 쿠바여성 아리아나(24)는 이민호, 김수현, 김우빈 등등 한국 남자배우를 비롯해 방탄소년단, EXID 등 아이돌 가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아리아나는 "우리집 빠케테의 절반 이상은 한국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빠케테에 담긴 한국 프로그램으로 한국어를 배웠다."이민호 사랑해요"라는 짧은 문장은 물론 "킹왕짱"이라는 은어까지 알고 있었다. 이날 밤 무역센터 앞에서 만난 프리랜서 기자 레이날도 에스코바씨는 "청소년과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꼬레아노(Coreano)'의 인기는 하나의 사회 현상"이라면서 "인터넷이 없는 쿠바에서 빠케테는 '한국이 담긴 마술상자'인 셈"이라고 표현했다. 쿠바=정구현 기자

2015-08-18

'빠르띠꿀랄' 50만명의 혁명…인터넷카드 사려면 긴 줄 서야

▶자영업자들의 혁명=12일 밤 오후 7시쯤 '쿠바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미라마르 지역의 국영 레스토랑 '엘 토코로로(El Tocororo)'. 유서깊은 식당이지만 저녁식사 시간임에도 실내 테이블 절반이 비어있다. 다음날 비슷한 시간 아바나 외곽에 있는 개인 운영 레스토랑 '카스티요(Castillo)' 내부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 개업한 지 3년에 불과한 식당이지만 문 밖에는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20m 정도 길게 늘어서 있다. 2012년 쿠바가 178개 업종에 대한 자영업을 허가한 후 거리에서 목격할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다. 일명 '빠르띠꿀랄(Particular·자영업)의 혁명'이다. 자영업자를 다른 말로는 '쿠엔타프로피스타(cuentapropista)'라고도 한다. 자영업 종중 식당 개업이 가장 활발하다. 지난 3년간 아바나에서만 400개가 새로 문을 열었다. 개인 식당들은 다양한 메뉴와 저렴한 가격, 트렌디한 유니폼을 입은 젊은 종업원, 친절한 서비스를 앞세워 천편일률적인 메뉴 일색인 국영식당으로부터 손님들을 빼앗고 있다. 카스티요의 매니저 살디바(35)씨는 매상을 공개하진 않았지만 "하루 평균 손님은 500명"이라고 했다. 손님 1인당 4달러씩만 쓴다고 해도 하루 매상은 2000달러다. 현재 쿠바인들의 평균 월급이 20달러임을 감안하면 이 식당에선 100명분의 월급을 단 하루에 벌고 있는 셈이다. 빠르띠꿀랄의 혁명은 민박집 '까사(Casa)'로도 알 수 있다. 지난 4년간 무려 1만여 개가 생겼다. 하루 숙박비로 20~40달러, 아침식사비로 5달러 내외를 받는다. 하루에 손님 1명만 받아도 한 달 수입은 750달러다. 식당과 까사 개업이 붐을 이루면서 부동산 가격이 뛰었다. 쿠바의 강남인 미라마르에서 민박집을 운영하는 후안 카를로스(28)씨는 "3년 전까지 미라마르 평균 집값이 3만5000달러 정도였는데 지금은 13만 달러까지 거래된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부동산 매매는 완전 개방되지 않아 기존 주택간 '맞교환'에 웃돈을 얹어주는 방식으로 거래된다고 한다. 택시 운전도 큰 인기다.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 택시인 '꼬꼬탁시(코코넛을 닮은 택시라는 뜻)'를 모는 호세(45)씨는 "아바나 시내를 오가는 클래식 자동차의 70~80%가 택시"라고 말했다. 아바나 시내 어디든 요금은 1달러다. 호세씨는 하루 평균 50달러는 번다고 했다. 지난 6월 라디오 방송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등록한 자영업자수는 5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고용한 직원 수는 1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 자영업 분야 종사자는 쿠바 노동인구 500만 명의 30%에 해당한다. 개인 운영 레스토랑 '까사 빅토르'의 주인은 "쿠바는 반세기 동안 가난하기만 했다"면서 "고생만 해온 쿠바인들도 이젠 부자 될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은 쓰나미"=14일 자정 아바나 시내 무역센터 앞. 줄잡아 100명은 넘을 듯한 인파가 계단과 인도에 주저앉아 하나같이 스마트폰이나 랩톱을 들여다 보고 있다. 현재 아바나 시내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35개 장소 어디서든 밤새도록 인터넷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와이파이에 접속하려면 시간당 2달러의 '인터넷 카드'를 구입해야 한다. 국영 통신회사 'ETECSA' 매장에 카드를 사러 가봤다. 끝도 없이 늘어선 대기자 틈에 끼어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줄 선 인파 사이로 암표상들이 오가며 장사를 했다. 카드 1개당 1달러를 더 붙여 3달러에 판다. 아직까지 국가가 인터넷을 통제하는 쿠바의 현주소다. 쿠바=글·사진 정구현 기자

2015-08-17

주요 상징물·거리공사 한창…"혁명은 보수중"

혁명광장·대성당·대형 예수상 새단장 관광 1번지 '오비스뽀' 거리도 파헤쳐 자영업도 허용…400개 개인식당 오픈 지난 13일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혁명광장(Plaza de la Revolution). 1959년 쿠바 혁명의 상징인 7만2000㎡(17에이커)의 넓은 부지 위에선 투쟁의 함성 대신 망치소리와 크레인 기계음이 메아리쳤다.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 방문을 앞두고 미사 집전을 위한 단상과 성가대 단원 합창대 설치에 인부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미국과 외교관계 회복으로 지금 쿠바 곳곳에서는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시내의 대성당, 아바나 중심 구 국회의사당 '까삐딸리오', 시내를 내려다 보는 모로 요새 옆 대형 예수상 등 쿠바의 대표적인 상징물들은 보수 공사를 위해 철제구조물로 둘러싸여 있다. 헤밍웨이가 즐겨찾은 호텔이 있는 관광 1번지 '오비스뽀(Obispo)' 거리도 10여 블럭에 걸쳐 땅이 파헤쳐져 있다. 2개월전부터 대대적인 상하수도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취재 통역과 안내를 맡은 쿠바인 펠리페 이슬라(59) 씨는 "쿠바 사람들 누구에게나 '전에 없던 일이나 장소가 언제부터 생겼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4~5년전쯤이라고 답한다"면서 "2010년 9월 경제·사회 개혁 선언이 본격적인 변화의 시발점이 됐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개혁 선언 후 쿠바는 식당, 택시 등 178개의 업종에 대해 자영업을 허가했다. 그전에는 노점상인도 매상을 나라에 납금하고, 월급을 받았다. 특히 지난 5년간 아바나 시내에서만 400개의 개인식당이 문을 열어 식자재 매입 경쟁, 노동 창출 등 자유 시장 경제가 서서히 뿌리내리고 있다. 4년 전 문을 연 산호세 시장도 변화의 상징중 하나다. 근처 거리에 산재해 있던 벼룩시장 재래 점포들을 항구의 대형창고로 모았다. 500여개의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내부는 한국의 동대문 시장을 연상케 한다. 이곳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는 토니(44)씨는 "산호세 시장에 입주한 뒤 벌이가 훨씬 좋아졌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시내 외곽으로 향했다. 아바나의 속살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대성당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다 동서로 난 무라야(Muralla) 길로 들어서면 쿠바인의 일상이 펼쳐진다. 철거 직전의 낡은 건물을 지날 때 마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골목에는 정부 배급소에서 타온 물건들을 파는 불법 민간 배급소, 그 민간 배급소에서 남은 물건을 다시 파는 좌판들이 즐비하다. 달러를 바꿔 주겠다는 암상인들도 접근한다. 쿠바에서 환전은 국가만 할 수 있다. 가장 특이한 점포는 '산테리아(Santeria)' 상점이었다. 산테리아는 아프리카 토속신앙과 기독교가 섞인 쿠바 종교로 신 혹은 성인을 뜻하는 산토와 집합명사 리아가 합해진 말이다. 여러 신을 모신다는 뜻이다. 상점에선 60여 종의 말린 나무가지를 판다.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빠라미(Parami)'라는 나무는 태우면 "집 나간 아내를 돌아오게 하는데 특효"라고 한다. 펠리페씨는 "최근 부자나 지식인 등 기득권층 사이에서 산테리아 신자들이 부쩍 늘면서 관련 상점도 많아졌다"면서 "변화에 대한 기대감도 있지만 토속신앙에 기댈만큼 불안도 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쿠바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다. 그 상징이 아바나시 북서쪽 '베다도' 거리에 있는 존 레논 공원(Parque Lennon)이다. 60년대 비틀스의 노래가 너무 미국적이라는 이유로 듣는 것조차 금지시켰던 쿠바가 2000년 공원에 존 레논의 동상을 만들었다. 공원 벤치에 앉은 형상을 한 레논 동상은 후안 곤잘레스(96) 할아버지가 관리한다. 동상의 안경을 훔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다. 펠리페 씨에게 쿠바의 '완전 개방' 시기를 물었다. 그는 "쿠바정부는 공식적으로 개방이라는 말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사회주의의 업그레이드'라고 표현한다"면서 "중국, 베트남 등 다른 공산국가들의 개방 정책에 대한 학습효과가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히 하나씩 진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현재 쿠바 정부의 개방 방향을 "혁명의 보수"라고 정의했다. 쿠바 시내를 이동하는 중에 여러차례 천둥과 번개가 요란하게 쳤지만 소나기만 잠깐씩 내렸다. 아직 쿠바를 뒤흔들 폭풍우는 오지 않았다. 쿠바= 글·사진 정구현 기자

2015-08-16

"아버지 세대들, 쿠바서도 일본인과 맞섰다"

'돌아가지 못한 슬픔' 기록 책을 쓰며 가장 가슴 아파 '한국이 조국' 잊지 않도록 젊은이들에 지원 절실해 쿠바 수도 아바나 동쪽 마탄사스주. 카리브해안을 따라 난 도로를 2시간 달려 도착했다. 한인 1세들이 일한 농장이 있는 이민 사적지이자 아직도 한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다. 쿠바 한인들의 대부로 불리는 임천택씨의 딸 마르따 임(77)씨는 갑작스런 연락에도 반갑게 기자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그녀는 쿠바에서 태어난 첫 한인 세대다. 아버지 임천택씨는 홀어머니와 2살때 멕시코 유카탄행 배에 탔고, 18살에 쿠바로 이민왔다. 쿠바 한인들은 1세를 "성인이 되서 쿠바로 온 한인"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2세이고 마르따씨 9형제는 3세다. 그녀는 한국어를 못했지만, 말투나 행동은 한국의 우리 할머니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학 교수출신인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큐바 이민사'로 이야기를 풀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기록을 토대로 지난 2000년 '쿠바의 한인들(Coreanos En Cuba)'이라는 쿠바 한인 이민사 속편을 출간했다. -출간 배경은. "역사는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남편(쿠바사람 폴 루이스)과 함께 10년간 조사했다. 한인들이 주고 받은 편지와 한인들을 인터뷰했다. 아버지 책이 자서전에 가깝다면 이 책은 사실에 주목했다. " -책을 쓰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점은. "돌아가지 못한 슬픔이다. 1세들은 모두 쿠바에 와서도 고국에 돌아갈 생각만을 했다. 그래서 쿠바에서 공민증을 받지 않은 분들도 여럿 계셨다. 공민증을 받지 못하면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끝까지 한국 국적을 포기 못한 분들이 많다." -왜 못돌아갔나. "여비가 없었다. 당시 대부분이 6~9명의 자식들을 뒀다. 매일 끼니 걱정해야 했던 삶이었다." -1923년 쿠바 한인들이 독립을 선언했다. 먼 타국에서 의미가 있는 일인가. "아버지 세대분들은 쿠바에서도 일본인들과 맞섰다. 300여명이 쿠바에 도착한 직후 일본 영사관에서 나와 조선이 식민지니 일본인으로 등록하라고 했다. 그에 맞서 아버지가 한인회를 조직했고, 독립선언까지 하게됐다." -당시 한인들의 삶은 어땠나. "일거리가 없었다. 선인장은 길어야 석달 수확한다. 그나마도 하루 일당이 몇센트였다. 계속 가난했다. 어린시절 1년 넘게 삼시세끼 옥수수 가루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생계가 어려운데도 독립자금을 보냈다. "아버지는 2살때 한국을 떠나 멕시코에서 독학으로 한글과 스패니시를 깨우치셨다. 내 나라를 알아야한다면서 한글학교를 열어 글과 말을 가르치셨다. 무엇보다 조선사람들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일조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셨다." -쿠바 한인들도 한식을 즐겨 먹나. "물론이다. 고추장, 김치, 만두, 잡채, 비빔밥, 찌개, 냉면 등등. 좋아한다. 그런데 고춧가루가 없고, 배추가 없어서 골치나(양배추)로 만든 쿠바식 김치라서 아쉽다. 김밥을 좋아하는데 김이 쿠바에 없어서 자주 못먹는다." -한국정부에 바라는 바는. "쿠바의 한인 젊은이들이 한국을 잊지 않도록 지원해달라. 한국어 교사도 더 보내주고, 교재도 보내줬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가 죽고나면 쿠바 한인들은 다 혼혈만 남게된다. 생물학적으로는 피가 묽어질 수 있겠지만, 내 조국은 한국이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도와달라." 마지막 질문으로 만약 아버지를 다시 만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한마디를 꺼냈다. "그라시아스(고마워요)." 감정 표현이 서툴어서 아버지 생전에 자주 못한 말이라고 했다. "잘 가르쳐 주시고 훌륭하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얼마전 세상을 떠난 도산 안창호의 딸 안수산 여사도 인터뷰에서 똑같은 말을 남겼다. 쿠바 마탄사스=정구현 기자

2015-08-13

92년 전 선인장 밭에서 "대한독립만세'

멕시코서 건너와 궁핍하게 살았던 300명 끼니 굶어가며 독립자금 모아 임정 보내 41년 '노동정지' 날벼락…미주한인이 도와 쿠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미국과의 오랜 적대관계를 청산하면서 '금단의 땅'이 '기회의 땅'으로 급변하고 있다. 쿠바는 에네켄 한인 이민 선조들의 혼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북한과는 오랜 우방관계를 맺고 있는 쿠바. 본격 개방을 앞둔 쿠바의 현지 표정을 정구현 기자가 직접 살폈다. 광복70주년 특별기획 '빗장 여는 쿠바를 가다'를 연재한다. 92년 전 1923년 3월1일. 쿠바 아바나 동쪽 마탄사스주 엘볼로 지역 선인장 농장. 검게 탄 까만 얼굴 일색의 한국인 300여 명이 손수 그린 태극기를 들고 한자리에 모였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조국의 독립을 선언한다." 비장했다. 4년전(3.1절) 한반도를 뒤흔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태평양을 건너 카리브해 날카로운 선인장 농장에서 출렁였다. 에네켄 2세 임천택(1985년 작고)씨가 1953년에 집필한 '큐바 이민사'에서 묘사한 작지만 큰 사건이다. 임씨는 쿠바 한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1905년 두 살때 홀어머니와 함께 인천항에서 멕시코 유카탄행 배에 오른 1033명 중 한 명이다. 그는 18세가 되던 1921년 유카탄에서 다시 쿠바로 2차 이민을 떠난 에네켄 300명에 포함됐다. 쿠바 한인회, 청년회, 한글학교를 창립했고 독립자금 모금을 주도했다. 그의 자녀 9남매 중 장남 헤르니모(2005년 사망)씨는 체 게바라의 혁명군에서 활동했고 쿠바 한인으로선 최고위직인 식량산업부 차관까지 지냈다. 쿠바 한인 밀집촌이 있는 마탄사스주에 사는 임씨의 딸 마르따(77)씨를 찾아갔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긴 '큐바 이민사' 초판본부터 공개했다. 32페이지 책에는 이민 동기, 과정, 이민 후의 삶, 단체 결성, 생활상 등을 세세히 담겨있다. 멕시코 1차 이민 동기로 임씨는 "묵국(멕시코)에서 4년만 기한을 채우면 금은동화를 한짐씩 짊어지고 안락생활을 할 수 있다는 풍문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그러나 막상 멕시코 유카탄에 도착하니 "금전 저축은 고사하고 그날 그날 생활도 곤란하고 4년 계약에 팔린 몸"이 되었다면서 "쓰라린 눈물로 다만 마음의 눈으로 고국의 하늘을 바라볼 뿐이었다"고 회고했다. 궁핍한 유카탄 한인사회에서 희망 이야기가 돌았다. 쿠바는 설탕 한 근이 20전이나 나가는 '백색(사탕수수) 황금의 땅'이라는 얘기였다. 1033명 중 300명이 쿠바로 2차 이민을 떠났다. 쿠바 한인의 시초다. 1921년 3월 20여 일만에 쿠바 마니티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곧 꿈은 깨졌다. 20전이던 설탕값이 2전으로 폭락했다. 매주 일당은 2달러로 한사람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돈이었다. "생각만해도 몸서리치는" 빈곤한 삶속에서도 그들은 조국을 잊지 않았다. 땡볕 사탕수수밭에서 하루종일 번 돈을 아껴 상해임시정부로 보냈다. 임씨는 "1945년 광복될 때까지 8년간 총 1489원15전을 송금했다"고 기록했다. 특히 "246원5전은 아바나 중국인 은행을 경유해서 중경에 있는 김구 선생에게 직접 부쳤다"고 적었다. 당시 송금에 동참한 에네켄은 30명이었다. 서른 가정이 평균 50원씩 분담한 셈이다. 한 가정당 400~500원씩 빚을 지면서 힘겹게 살던 때였다. 마르따씨는 "에네켄들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독립자금을 만들 수 없었다"면서 "아버지께서 생각해내신 모금 방법은 쌀이었다. 끼니 때마다 밥을 짓기 전 가족 한 사람당 한 숟가락씩 쌀을 덜어내 그 쌀을 팔아 독립자금을 마련하셨다"고 회상했다. 에네켄들은 이역만리에서 빚을 지고, 끼니를 줄이면서까지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원했다. 그들에게 고난은 일상과 같았다. 이민 20년만에 쿠바의 불안정한 정세가 에네켄들에게 최대 위기를 몰고왔다. 1941년 190일간 '노동정지(파업)' 시기가 찾아왔다. 대부분 하루 벌어 그날 먹고 살던 그들은 반년 넘게 돈 한푼 만지지 못했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했던 에네켄들에게 힘이 된 건 미주 한인들이었다. 임씨는 "노동이 영영 정지되어 생사조차 가늠할 수 없을 때 4개 미주 국민총회에서 2000여 원의 성금을 보내줘 그 은공을 영원히 잊지 않고 있다"면서 "특히 오리건주 장라득씨는 70여세 고령으로 신체 불건강중에서도 수차례 구조한 금액이 400여 원에 달해 쿠바 동포의 은인으로 인증하는 바이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가 남긴 독립금과 지원금에 대한 기록은 상해임시정부, 에네켄, 미국 한인들을 잇는 지원금의 선순환인 셈이다. 임씨가 기록한 책 '큐바 이민사'엔 인구조사 기록도 적혀있다. 1921년에 쿠바로 건너온 에네켄 300여 명중 1953년 여름까지 32년간 103명이 죽었고, 123명의 새생명이 태어났다. 그후 62년이 흐른 2015년 에네켄의 수는 1099명이다. 94년전 생존과 싸우면서도 조국을 잊지 않은 한국인의 후예들이다.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들은 16일에 광복절 행사를 개최한다. 에네켄들이 한자리에 모여 조국을 기억하는 날이다. 쿠바 한인회장 안토니오 김(72)씨는 "이번 행사에 참가하겠다는 한국의 정치인은 없다. 또 1099명의 에네켄 중 한국에서 열리는 기념행사에 초청받은 이도 없다"고 했다. 92년전 사탕수수밭 위 에네켄들이 외쳤던 '대한독립만세' 함성은 여전히 외롭다. 쿠바 마탄사스=정구현 기자 ☞에네켄:용설란의 일종으로 선박용 밧줄의 원료로 쓰이는 선인장을 스페인어(henequen)로 에네켄이라 한다. 100여 년 전, 멕시코 등 중남미로 건너간 한인 이민 1세들이 에네켄 농장에서 일한 것을 두고 이곳 한인들을 에네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2015-08-13

"쿠바 시장 개척하자" 한인 경제인들 잰걸음

한인 경제인들의 쿠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옥타(OKTA.세계한인무역협회) 북미주 경제인들은 오는 9월 18일부터 2박3일간 뉴욕에서 '2015 북미주경제인대회'를 열고 빗장 풀린 쿠바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쿠바는 지난 7월 미국과 54년 만에 국교정상화를 공식선언한 후로 관광과 비즈니스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발빠른 한인들은 블루오션인 쿠바에서 사업 기회를 찾거나 확장하려고 관광을 통한 개별 탐색전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에 옥타 멤버들은 그동안 구축해 놓은 네트워크를 활용, 다른 한인 경제단체에 한발 앞서 대응한다는 것이다. 뉴욕한인경제인협회(회장 허순범) 주관으로 라구아디아 매리엇호텔에서 열릴 9월 북미주경제인대회 때 옥타 쿠바지회장과 쿠바 통상부 관계자를 초청 '쿠바를 비롯한 남미 신시장 개척 세미나'를 하기로 했다. 옥타 쿠바지회와는 MOU도 체결하고 시장조사단도 꾸린다는 계획이다. 옥타 LA지회 조병태 고문은 "북미주경제인대회에 앞서 미국 각 지회 대표자들의 사전 모임에서 쿠바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무작정 쿠바로 들어가기 보다는 전세계 네트워크를 가진 옥타의 특성을 십분 살려, 현지 사정과 무역시 고려해야 할 특성, 거래가 유망한 아이템, 시장 잠재성 등을 체크하는 시간을 갖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쿠바시장에 대한 한인 경제인들의 높은 관심과 달리 현지 분위기는 아직까지 조용한 편이라는 게 코트라(KOTRA) 아바나무역관의 정덕래 관장의 말이다. 정 관장은 "한국 기업과 미주 한인 경제인들의 관심과 문의가 점점 늘고 있기는 하나 아직 미국의 경제봉쇄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실질적 변화는 없다. 특히 LA나 미국 거주 한인이 비즈니스를 목적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관장은 현재 아바나에서 활동 중인 한국기업은 수산물 수출업체 네네카(NENEKA)와 현대종합상사 정도이며, 이외에 코트라, 한쿠바교류협회, 선교사 등을 합쳐도 한국인은 15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네네카는 한인 김정동 대표가 1997년 쿠바에 법인을 세운 1호 한국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2013년 쿠바 수산물 수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정 관장은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후 당장에라도 시장이 개방될 것 같은 말들이 많지만 실제 현지 체감 정도는 매우 낮은 편"이라며 "충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있다. 하바나 무역관도 매년 11월 열리는 아바나 국제전시회 참가 등 기반조성 구축사업을 하며 한국 및 한인기업들의 지원 업무 등에도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주경제인대회에 참가하고자 하는 무역인은 오는 15일까지 지회별 옥타 사무국을 통해 신청을 마쳐야 한다. ▶문의:옥타 LA지회 사무국 (323)939-6582 김문호 기자

2015-08-13

아바나엔 기쁨의 함성…쿠바계 마이애미는 분노의 시위

17일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자 쿠바인들은 "삶의 모든 것이 바뀔 것"이라며 역사적인 날을 기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쿠바 수도 아바나 곳곳에서는 국교정상화를 환영하는 사람들이 무리지어 행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각급 학교에서는 수업을 중단한 채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카를로스 곤살레스라는 IT 전문가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쿠바인들에게 이건 정말 한 줄기 산소같은 일이다"라며 "구소련의 지원이 끊긴 이후 쇠락해진 경제는 최근 여러 차례에 걸친 소규모 개혁에도 불구하고 나아지지 않았는데 국교 정상화로 교역량 증가를 비롯해 많은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국교 정상화를 발표하면서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로 하여금 쿠바 여행과 송금과 관련한 규제를 개정하도록 지시했다. 이에 따라 가족방문이나 공무출장, 취재, 전문연구, 교육, 종교, 인도적 지원 등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12개 분야에서 출입국 허가증을 받은 미국인은 쿠바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기업과 민간 분야의 여행은 당분간 규제가 유지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규제가 풀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교가 단절된 상태에서 특별 비자를 받고 우회해서 쿠바를 방문한 미국인은 지난 2년간 9만명에 달한다. 인근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2번째로 많다. 조만간 규제가 풀리고 직항노선이 생기면 쿠바의 관광산업은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연간 500달러로 제한된 기부성 송금한도도 2천 달러로 인상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쿠바 국민의 정보통신망 접근을 확대하기 위해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쿠바에서 상업용 정보통신 및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와 시설을 구축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으로서도 이해를 주고 받는 윈윈 거래라고 할 수 있다. 아바나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 것과 달리 피델 카스트로 공산당 정권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쿠바인들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는 이날 분노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1950~1960년대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망명한 이들은 거리에 모여 오바마 대통령을 탄핵하라며 국교 정상화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쿠바 출신인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백악관이 얻은 것은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을 쿠바에 양보했다"고 비판하면서 주쿠바 미국 대사관 개설 및 대사 임명에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양국 관계 정상화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CNN에 사상 첫 남미 출신인 교황이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수감된 미국인을 석방해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고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수감된 쿠바인을 풀어줄 것을 설득하며 개인적으로 호소했던 것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신복례 기자

2014-12-17

미국-쿠바 국교 정상화…여행·관광업 '빗장 확 열릴 듯'

미국과 쿠바가 17일 53년만에 국교 정상화를 공식 선언하면서 정치·외교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서 열린 공식 연설을 통해 쿠바와 외교관계 재수립 및 경제와 여행제한을 크게 완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사항은 발표되지 않았으나 가족방문을 비롯한 교육, 종교, 교역 등 12개 분야에 한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쿠바 방문이 가능한 현 여행 규제도 크게 완화될 것으로 알려져 지난 2012~2013년 사이 9만명이었던 합법적 쿠바 방문 미국인 수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해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방문횟수는 50만회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방문객에 대한 지출제한도 완화해 400달러 상당의 물품과 100달러 상당의 주류 및 담배를 구매해 돌아올 수 있도록 했다. 쿠바 하바나 소재 미국계 여행사에 따르면 현재 여행규정으로는 미국인의 쿠바 여행비용이 주당 4000달러이지만 규제완화가 이뤄질 경우에는 민박 등이 가능하기 때문에 1000달러 수준으로 낮아질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타운 한인여행업계도 쿠바 여행완화 조치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삼호관광의 스티브 조 상무는 “쿠바는 손꼽히는 여행 희망지 중의 하나이지만 지금까지 큰 교류가 없었던 관계로 추후 상황을 지켜본 후 투어상품 개발 논의가 이뤄질 것 같다.”면서 “쿠바 관광상품이 런칭되면 한인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매출 증가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 등 주요매체들은 일제히 오바마 대통령의 그릇된 외교정책 종식 선언에 찬사를 보내며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대통령 역시 자국민들의 여행제한을 철폐하고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양국간 무역·금융거래가 활발히 전개될 것이라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여행 및 금융 관련 규제 완화를 선언함에 따라 그 동안 500달러였던 민간 송금제한액이 분기당 2000달러까지 늘어나게 되며 인도적 차원의 기부 및 후원에 나서고 있는 개인사업자들은 더 이상 정부 허가증이 필요없게 된다. 지금까지 쿠바에 대한 최대 식량공급국가로 알려진 미국은 대쿠바 송금액도 지난 2012년 26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쿠바 가정의 3분의 2가 송금을 받았을 정도로 쿠바경제에 큰 기여를 해 왔기 때문에 이번 송금제한 완화로 송금액 규모가 큰 폭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미국내 각 기관들이 쿠바의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으며 미국서 발행된 크레딧카드나 데빗카드를 쿠바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박낙희 기자

2014-12-17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